이야기로 읽는 묵상
마노아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묘’, 곧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꾸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크기 안에 넣으려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언제 끝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마음을 놓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이유를 알아낸 뒤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다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자 마노아는 말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죽으리로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그의 아내는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실 생각이었다면 이 모든 것을 보여주시고 약속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 앞에 놓인 현실은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두려움으로 현실을 해석했고, 한 사람은 하나님이 이미 베푸신 은혜로 현실을 다시 해석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도 이것인지 모릅니다.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결론 내리지만,
믿음은 이미 일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음 장면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본문의 마지막은 조용합니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자랐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일은 언제나 요란하게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 변화도 느끼지 못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사람을 자라게 하시고, 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지 모두 알아내려고 애쓰기보다,
이미 내 삶에 남겨 두신 은혜의 흔적을 기억해 보면 좋겠습니다.
2, 기도문 주님,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날 때마다 제 두려움으로 먼저 결론 내리지 않게 하소서. 알아야만 믿는 사람이 아니라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오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주님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계심을 믿으며 조용히 제 자리를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