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자랑하기 위해 노력합니까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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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보통 강한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학벌,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많은 팔로워, 뛰어난 능력, 화려한 스펙.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더 강해져라." "더 똑똑해져라." "더 인정받아라." 그래야 안전하고, 그래야 행복하고, 그래야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이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보다 먼저 능력을 찾고, 은혜보다 먼저 방법을 찾고, 기도보다 먼저 계산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늘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세상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실 때 철학자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자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군대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보내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약해 보이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실패의 상징이었습니다. 패배의 상징이었습니다. 수치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 말은 당시 사람들에게 "왕이 패배했다." "하나님이 졌다." 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왜 미련해 보일까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힘으로 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을 무너뜨립니다. 십자가는 "네가 너를 구원할 수 없다." 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죄보다 무능함을 더 두려워합니다. 용서받지 못하는 것보다 실패하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보다

사람들에게 약해 보이는 것을 더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강할 때가 아니라 약함을 인정할 때. 우리가 자랑할 것이 많을 때가 아니라 붙들 것이 십자가밖에 없을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에서 가장 깊은 기도는 대개 가장 약해졌을 때 나옵니다. 가장 진실한 회개도 자신의 한계를 만났을 때 나옵니다. 가장 뜨거운 믿음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시작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히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살겠다"는 인간의 자랑이 죽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신다"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강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요즘 나는 무엇을 통해 안전함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까? 십자가입니까, 아니면 나의 능력과 조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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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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