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방향보다 속도를 먼저 높입니다. 관계가 흔들리면 더 많은 말을 쏟아 내고, 일이 불안해지면 더 촘촘한 계획을 세우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당장의 손해를 피할 방법부터 찾습니다. 교회와 사역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사람의 반응과 숫자를 확인하며 마음을 붙듭니다. 가만히 있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무엇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움직이다 보면,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놓치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의 모압도 살아남을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적들이 몰려오고 나라가 흔들리자 울며 탄식하고, 산당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울음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눈물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방향을 바꾸지 않은 채 상황만 바꾸어 달라고 울었기 때문입니다.
모압은 하나님께 돌아오기보다 자신의 힘과 자랑을 붙들었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기도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만든 길로 자신을 구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도움만 요청했을 뿐 삶의 주도권을 내어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와 비슷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도 내 자존심을 내려놓지는 않습니다. “이 관계를 회복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도 먼저 사과하거나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제 앞길을 열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도 정직하게 손해 보는 길은 피하려 합니다.
회개는 많이 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의지의 전환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압에게 피난민을 숨겨 주고, 쫓겨난 자들을 보호하며, 압제받는 사람의 피난처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살길은 단순히 모압이 위기를 모면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만 살려고 하던 나라가 다른 사람을 살리는 나라로 바뀌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시는 길에는 언제나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내 자존심은 작아지고, 사람을 향한 사랑은 커집니다. 내 손해만 계산하던 마음이 약한 사람의 형편을 돌아봅니다. 나를 증명하려는 힘은 줄어들고, 정직과 정의를 선택할 용기는 자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길은 때로 우리가 기대한 ‘지름길’이 아닙니다.
사과해야 하는 길일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길일 수 있습니다.
잘못된 관계와 습관을 끊어야 하는 길일 수도 있고, 당장의 유익을 포기하면서도 정직을 선택해야 하는 길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내 눈에 느리고 불리해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든 길은 잠시 안도감을 줄 수 있어도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생명은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살리시는 하나님께 피할 때 주어집니다.
본문은 사랑과 진실로 다스리는 왕이 다윗의 장막에 앉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길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위해 죽음을 지나 생명의 길을 여신 왕에게 피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필요한 것은 더 빠른 판단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묻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내신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불안 때문에 내가 만든 길을 달리고 있는가?” 내가 살기 위해 붙들고 있지만, 오히려 나와 다른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있는 ‘나만의 살길’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실천
오늘 해결하려고 애쓰는 문제 한 가지를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문제 앞에서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자존심, 사람의 인정, 돈, 통제, 익숙한 방식 가운데 하나가 보인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십시오. 그 후 작은 순종 한 가지를 실행해 보십시오. 먼저 사과하기, 도움을 요청하기, 불필요한 말을 멈추기, 미뤄 둔 정직한 결정을 내리기, 힘든 사람 한 명의 편이 되어 주기 같은 구체적인 행동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