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라고 여긴 자리에서 노래가 시작됩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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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7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달을 마무리할 때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삶을 결산합니다. 계획했던 일을 얼마나 이루었는지, 관계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기도한 문제는 해결되었는지 돌아봅니다.

그런데 사람은 한 달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보다 가장 마음 아팠던 한 장면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나는 역시 안 되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누군가의 차가운 반응 하나로 “이 관계는 끝났다”고 단정합니다. 상황이 오래 달라지지 않으면 하나님마저 나를 포기하신 것처럼 느낍니다.

고통이 힘든 이유는 아프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고통에 너무 쉽게 ‘최종 판결’이라는 의미를 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12장은 무서운 심판의 예고 한가운데서 갑자기 찬양을 시작합니다.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이스라엘이 심판받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무너뜨린 관계와 공동체에는 분명한 대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대충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심판이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행동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심판을 하나님의 떠나심으로 해석했지만, 하나님은 심판을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과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다시 품으십니다. 징계는 관계가 끝났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관계를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아직 모든 상황이 회복되기도 전에 고백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우리는 보통 상황이 달라져야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장의 숫자가 달라지고, 검사 결과가 좋아지고, 상대방의 태도가 바뀌어야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찬양은 상황의 변화보다 먼저 시작됩니다. 그가 붙든 것은 “문제가 해결되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작게 보는 낙관이 아닙니다.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영적 현실감각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가 실제로 크더라도, 그 문제가 하나님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내 실패가 분명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 힘이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는 손까지 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판을 가볍게 덮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11장이 약속한 ‘이새의 줄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노 아래로 들어가셨기에 우리는 위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끝을 대신 통과하셨기에,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실패는 더 이상 최종 결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찬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자기 위로가 아닙니다. “아픈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내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어그러지지 않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신다.” 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7월의 마지막 날, 이번 달을 실패와 부족함만으로 결론 내리지 마십시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드러내실 뿐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폐허를 바라보며 정죄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폐허 가운데 다시 거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일이 잘되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지막 장면을 하나님께서 쓰고 계시기 때문에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문제나 실패를 하나님의 최종 판결처럼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자리에서 다시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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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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