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할까?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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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청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사실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실패하고 싶지 않아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요."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사랑을 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상처를 피하고 싶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만남도 어렵고, 결혼도 어렵고, 헤어짐도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원래 사랑하도록 창조되었지만, 타락 이후에는 사랑보다 안전을 더 추구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내 약점을 보여줘야 합니다. 거절당할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관계를 소비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 사람은 나와 잘 맞을까?" "이 관계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관계를 선물로 보기보다 프로젝트처럼 평가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내 안의 불안이 해결되지 않으면 관계는 계속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결혼의 문제를 "누구를 만나느냐"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까?"보다 "하나님은 나를 어디로 부르셨을까?"를 먼저 묻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관계가 아니라 부르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인생의 정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직장도, 배우자도, 진로도, 교회도. 마치 정답 하나만 찾으면 모든 불안이 사라질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정답을 찾는 것이 인생의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인생의 핵심이라고. 그래서 바울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 이 말은 변화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먼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사실 외로움의 가장 깊은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가 내 옆에 있으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외로움은 사람의 부재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결혼했는데도 외롭고, 어떤 사람은 혼자인데도 평안합니다. 문제는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리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에게서 존재의 의미를 얻으려 할 때 우리는 관계를 우상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사람을 붙잡지 않습니다.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고, 기다리지만 조급하지 않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만 그 관계가 자신의 구원이 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결혼이든 독신이든 중요한 것은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질문은 "누구를 만나야 할까?" 가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 나를 어떤 사람으로 빚어가고 계실까?" 입니다. 그 질문이 먼저 풀릴 때 만남도, 헤어짐도, 결혼도, 독신도 조금은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보다 사람을 통해 내 외로움과 불안을 해결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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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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