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삶이 무너질 때보다, 나를 지탱하던 것이 사라질 때 더 크게 흔들립니다. 늘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사람이 떠나고, 안정적이라 믿었던 일에 문제가 생기고, 계획대로 진행되던 일이 갑자기 멈추면 마음속에서는 현실보다 더 큰 문장이 만들어집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이것마저 무너지면 정말 끝인데….”
“앞으로는 전부 잘못될 것 같아.” 사람은 현재의 한 가지 상실을 미래 전체의 붕괴로 확대해서 받아들이곤 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미리 끌어와 두려워합니다. 상황이 불안해서 불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의지하던 질서가 흔들리면서, 내가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한 시대를 이끌던 왕이 죽었습니다. 익숙했던 질서가 끝났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사야는 전혀 다른 왕을 봅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땅의 왕은 죽었지만, 하늘의 보좌는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시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사람이 떠나고, 계획이 틀어지고, 익숙한 환경이 사라져도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는 대개 위기를 만나면 상황이 빨리 정리되기를 원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잃어버린 것이 회복되고, 다시 예전처럼 안정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새로운 왕이나 더 나은 정치적 대안을 먼저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은 언제나 상황의 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이사야를 편안하게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 이사야는 곧바로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우리는 삶이 어려워지면 다른 사람의 잘못과 환경의 문제를 먼저 봅니다. 누가 나를 힘들게 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를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 앞에 서면 세상을 평가하던 눈이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상황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구나.”
“사람의 말과 평가에는 민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둔해져 있었구나.” “입술로는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것을 왕처럼 의지하고 있었구나.”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발견한 것은 낮은 자존감이 아니라 죄에 대한 정직한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천사가 제단의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술에 댑니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죄를 실제로 사하여 주셨습니다. 은혜는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감당할 수 없는 값을 하나님께서 대신 담당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사야가 보았던 이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연결합니다. 높이 들린 보좌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부정함과 심판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이사야의 입술에 닿은 숯불보다 더 분명한 용서가 십자가에서 선포되었습니다.
“네 죄가 사하여졌다.”
“너는 정죄받은 자가 아니라 보냄받은 자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용서 이후에 들립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는 자신이 완전해졌기 때문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이 아닙니다. 용서받았기 때문에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맡은 사명은 쉽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해도 사람들이 듣지 않을 것이고, 유다는 결국 황폐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마지막에 한 문장을 남기십니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나무가 잘리고 불에 탄 것처럼 보여도 뿌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끝이라고 선언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의 씨를 남기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소망은 “모든 일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릴 것이다”라는 낙관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더 단단합니다.
왕이 죽어도 보좌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내 죄가 드러나도 십자가의 은혜는 마르지 않습니다.
눈앞의 나무가 잘려도 하나님께서 남기신 그루터기에서는 다시 생명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무너진 것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붙들던 것은 사라질 수 있지만, 나를 붙드시는 그리스도는 사라지지 않으십니다.
나는 무엇을 두고 “이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오늘 그 두려움을 비어 있지 않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