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이지열은혜이음교회

약 1,018자읽는 데 3분

이야기로 읽는 묵상

월요일 아침은 늘 정체성을 시험합니다. 사업가는 성과로,직장인은 평가로, 취업 준비생은 결과 없는 노력으로, 부모는 끝없는 책임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야 하는 자리 앞에 섭니다. 사람은 주말을 지나 월요일을 맞이할 때마다 이름이 아니라 역할로, 존재가 아니라 결과로 자신을 설명하려는 압박 속에 놓입니다.

요한도 그런 자리 앞에 섰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마음이 아니라 그의 정체를 규정하려 했습니다. 무엇이 되었는지, 누구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어떤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지를 요구했습니다.

요한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했습니다. 메시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며, 사람들이 기대하던 그 인물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요한은 ‘될 수 있는 나’를 붙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부르신 나’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나는 말씀이 아니라 소리다. 주인공이 아니라 증인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요한의 사명은 성공이 아니라 방향이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켜 세워 그리스도를 보이게 하는 삶이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 자신의 삶을 대신 설명해 주시는 분,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시는 분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경쟁자가 아니었습니다. 요한이 사라져도 되는 이유, 요한이 기꺼이 작아질 수 있었던 근거였습니다. 이 아침, 우리는 다시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월요일, 성과와 인정과 비교가 말을 거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선택 앞에 놓여 있습니다. 월요일은 ‘잘되는 나’를 증명하는 날이 아닙니다. 월요일은 ‘아니요’로 시작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소리로 살아가는 날입니다.

복음과 성찰

복음은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답을 바꿔 놓습니다.

우리는 성취로 자신을 설명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나를 다시 정의합니다.

오늘 내가 붙들고 있는 나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부르신 나’인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인가?

예수님은 나를 대신해 주인공이 되어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려와도 되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길을 내는 삶을 살아도 됩니다. 나는 요즘 말씀을 전하는 소리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말씀보다 앞서려는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바라볼수록 내 삶의 방향은 분명해집니다.

주목받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그분을 가리키는 삶은 헛되지 않습니다. 오늘 내 일터와 가정에서 사람들이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될 장면은 어디일까?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

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이지열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