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지쳐 있습니다. 밀린 업무를 생각하고, 해결되지 않은 관계를 떠올리고, 반복되는 하루를 계산합니다. 분명 살아가고는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생명을 누리며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하루를 버티고 있는 걸까?"
우리는 생각보다 '죽음'을 먼 미래의 사건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심장이 멈추는 날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삶, 감사를 잃어버린 마음, 사랑할 여유가 사라진 관계, 내일을 기대하지 못하는 일상. 이것도 죽음의 질서가 우리의 삶을 잠식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첫 열매'라는 말은 단순히 예수님 한 분만 부활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조금 늦춘 사건이 아닙니다. 죽음이 지배하던 세상에 생명의 질서가 들어온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단지 죽어서 천국 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도 생명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불안보다 신뢰를 선택하고, 비교보다 감사를 선택하며, 포기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삶. 세상은 여전히 죽음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빨리 성공해야 하며, 실패하면 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다르게 살아갑니다.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시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많은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상황이 좋아졌다는 소식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미 역사의 결말을 바꾸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소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말을 알기 때문에 오늘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내 삶에서 '죽음의 질서'(두려움, 체념, 비교, 냉소)가 지배하고 있는 영역은 어디이며,
그곳에 부활의 생명은 어떤 선택을 요구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