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열은혜이음교회
우리는 누군가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을 돕지는 않을 때가 있습니다. 힘들다는 동료에게 힘내라고 말합니다. 지쳐 있는 가족에게 잘 쉬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모두 필요한 말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말들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야고보는 헐벗고 먹을 것이 없는 형제자매에게 따뜻하게 지내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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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을 돕지는 않을 때가 있습니다. 힘들다는 동료에게 힘내라고 말합니다. 지쳐 있는 가족에게 잘 쉬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모두 필요한 말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말들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야고보는 헐벗고 먹을 것이 없는 형제자매에게 따뜻하게 지내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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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힘든 일을 겪을 때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만 더 버텨 보자.” 그런데 버티는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상황을 견디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원망하고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남들은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를 더 지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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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시험을 만났을 때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어떻게 기쁨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야고보는 시험 자체가 기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험을 통해 믿음의 인내가 만들어지고, 그 인내가 우리를 온전하게 한다고 말합니다(2–4절). 우리는 문제가 해결되면 자신도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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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라도 그 과정까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제 생각이 분명해질수록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듣게 하시고, 일을 이루려는 마음이 앞서 사람의 마음을 지나치지 않게 하소서. 익숙한 경험을 지혜로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제 판단이 옳다는 확신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게 하소서. 오늘 맡겨진 일을 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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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걱정해서 건넨 말이 부담이 되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나선 일이 오히려 상대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을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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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입니다. 이미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큰소리쳤다는 이유로, 이제 와서 잘못을 인정하면 그동안의 수고가 모두 헛수고가 될 것 같아 쉽게 돌아서지 못합니다. 직장에서는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기보다 그 판단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고, 관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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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5주 동안 시편 23편을 한 절씩 살펴보았습니다. 1절에서 5절까지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윗은 노년에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 그리고 공급하심에 대해서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6절에 이르면, 다윗의 시선이 조금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지나온 길을 돌아 보았다면, 이제는 앞으로 걸어갈 길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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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이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지난주에 끝내지 못한 일도 있고, 이번 주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불편한 말 한마디가 주말을 지나서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자꾸 떠올리게 되고,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혼자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수록 멈추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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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름의 기대를 품습니다. 오늘은 별다른 문제가 없기를, 만나는 사람들이 친절하기를, 계획한 일들이 무리 없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루는 기대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뜻밖의 오해를 낳기도 하고, 옳다고 생각한 선택이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레위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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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은 아주 불편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이 말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왕이 없었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각자가 자기 판단을 최종 기준으로 삼던 시대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왕이 사라진 삶의 문제는 단지 예배를 덜 드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마음에서 밀려나면,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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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평범한 일들에 제 존재를 걸고 살아가는 마음을 보게 하소서. 사람의 반응 하나에 저 자신을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일이 잘되고 못되는 것으로 제 가치를 결정하지 않게 하소서.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되 그것들에게 제 마음의 주인 자리를 내어주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성과보다 그리스도께, 인정보다 그리스도께, 안정보다 그리스도께 제 마음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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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인가를 사랑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무엇인가에 자기 존재를 걸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상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금으로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평범한 것들에 마음을 걸고 살아갑니다. 오늘 누군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카톡에 왜 답이 늦는지, 내가 한 말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번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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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문 문짝을 뽑아 산 위까지 메고 갈 만큼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적을 이길 힘은 있었지만,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힘은 없었습니다. 가사에서는 기생을 찾아가고, 이후에는 들릴라를 사랑합니다. 들릴라가 자신의 힘의 비밀을 집요하게 캐묻는데도 삼손은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삼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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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보이면 움츠러들고, 실패하면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반대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만 골라 쓰시는 분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을 붙드시고 그 부족함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삼손은 강했지만 성숙하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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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은 보고, 마음에 들었고,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처럼 밀어붙였습니다. 우리도 종종 그렇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의 크기를 하나님의 뜻의 크기로 착각합니다. 일이 풀리기까지 하면 더 쉽게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까 된 것 아닐까?” 그러나 오늘 본문은 조금 불편한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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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묘’, 곧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꾸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크기 안에 넣으려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언제 끝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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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의 아내에게는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가 가장 가능성을 잃어버린 자리에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도 종종 희망이 생겨야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고, 가능성이 보여야 다시 힘을 냅니다. 하지만 성경의 소망은 반대입니다. 가능성이 있어서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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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시편 23편을 한 절씩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오면서 한 가지 사실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되는데, 양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가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로, 의의 길로 인도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이 삶의 여정을 인도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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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제17문은 인류의 타락이 우리에게 어떤 상태를 초래했는지 묻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타락은 온 인류를 죄와 비참의 상태에 빠지게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비참은 단순히 불행하거나 우울한 감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 그 자체를 뜻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상태가 비정상적이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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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죄를 저지르면서도 갖는 가장 큰 망상은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고도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평안은 원하지만, 정작 그분이 제시하시는 삶의 기준과 통치는 부담스러워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회개의 근거가 아닌, 불순종을 지속하기 위한 도구로 오용하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