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열은혜이음교회
"세상은 너희를 미워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강해지라는 명령이 아니라, 놀라지 말라는 설명입니다. 흔들리는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두려워지는 것도 믿음 없음이 아닙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방향을 바꾸십니다. "성령이 증언하시니, 그리고 너희도 증언하게 되리라" 증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흔들리지 않아서 되는 것도 아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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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너희를 미워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강해지라는 명령이 아니라, 놀라지 말라는 설명입니다. 흔들리는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두려워지는 것도 믿음 없음이 아닙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방향을 바꾸십니다. "성령이 증언하시니, 그리고 너희도 증언하게 되리라" 증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흔들리지 않아서 되는 것도 아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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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우리는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 결심으로 서지 못하는 존재임을 압니다. 다짐하지만 흔들리고, 붙들겠다고 말하지만 놓아버리는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를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결심이 아니라 주님의 중보 위에 서 있음을 믿습니다. 내가 주를 붙들기 전에 이미 나를 붙들고 계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무너질 때마다 끝이 아니라 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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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에 있었던 제자들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소위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곧 떠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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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그 자리에서,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들어 나를 붙드십니다. 나는 외로움이 밀려오는 순간, 그것을 하나님이 떠나신 증거로 해석하며 더 닫히고 있지는 않은가? 감정이 고요해지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시간에도, 주님의 임재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나를 감쌉니다. 오늘 내 일상 속에서 피하고 싶은 사람, 부담스러운 사람 가운데 주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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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유난히 사람이 많은데도 혼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하고, 하루를 바쁘게 보내지만 마음 한쪽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남아 있습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늘 함께 계시던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 앞에서 그들은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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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길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길이신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결정을 내릴 때, 예수님보다 ‘확실한 정보’를 더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확신은 정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옵니다. 지금 내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길이 안 보여서인가요, 주님을 신뢰하지 못해서인가요? 길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 이릅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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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시작할 때 우리는 종종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으로 하루를 엽니다. 일의 방향, 관계의 선택, 미래에 대한 불안. 길은 많은 것 같은데,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알아야 할 것 같고, 더 분명해져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마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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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자신에 대해 꽤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저 상황에서는 신앙을 지킬 것이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그는 진심이었습니다.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 그러나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합니다. 두려움 앞에서 인간의 결심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집니다. 그런데 복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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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결심은 무너질 수 있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결심과 의지를 너무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복음은 실패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내가 넘어졌거나 숨기고 싶은 실패는 무엇인가? 오늘도 예수님은 넘어질 수 있는 제자를 여전히 부르고 계십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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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둠으로 가는 순간은 생각보다 그렇게 극적인 순간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큰 악을 선택하면서 인생이 무너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아주 작은 마음에서 시작되죠. 마음에 섭섭함이 하나 남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대할까.” 작은 실망이 쌓입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해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조용히 마음 한쪽에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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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큰 죄보다 작은 어둠을 숨길 때 무너집니다. 요즘 내 마음 속에서 숨기고 있는 작은 어둠은 무엇입니까? (섭섭함, 실망, 비교, 욕심 등) 예수님은 우리의 어둠을 아시면서도 식탁을 내어 주십니다. 나는 그것을 혼자 붙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 앞에 가져가고 있습니까? 빛 가운데 서는 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오늘 내가 빛 가운데 나오기 위해 정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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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더 인정받고 싶고, 더 중요해 보이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높아지고 싶습니다. 제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누가 더 큰지 이야기했고, 십자가보다 자리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십니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십니다.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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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높아지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낮아져 사랑하셨습니다. 나는 요즘 어떤 자리에서 높아지고 싶어 하고 있습니까? 인정, 자리, 이미지 중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사람은 사랑받을 때 비로소 변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생각’으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경험’으로 느끼고 있습니까? 복음은 “사랑하라”는 명령 이전에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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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구약성경을 풀어서 설명하시고, 질문에 답변하시며, 그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끌고 들어왔습니다. 이 여인을 성경은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이라고 말해줍니다. 이 여인을 끌고 온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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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마음은 더 불안해지고, 주님께 맡길수록 비로소 생명이 시작됩니다. 나는 오늘도 잃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는가? 잃어도 괜찮다는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고 있는가? 주님, 우리는 붙잡는 법을 배우며 살아왔습니다. 놓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했고 잃지 않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주님의 길이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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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생각한 영광은 권력을 잡는 순간, 세상을 뒤집는 순간, 사람들이 환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광은 완전히 다른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사람들이 생각한 길은 살아남는 길이었습니다. 높아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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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님을 따르지만 여전히 내가 원하는 방식의 왕을 기대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떤 왕으로 기대하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의 길이 아니라 내가 편한 길로 예수님을 따라가려 할 때가 있음을 봅니다. 나는 예수님의 길보다 내 기대를 더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힘과 성공의 왕이 아니라 십자가의 왕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묵상합니다 나는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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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여!” 사람들은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압제를 끝내 줄 왕, 세상을 뒤집어 줄 왕, 자신들의 삶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왕을.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환호했죠.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왕의 모습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왕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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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예수님을 사랑하기보다 신앙을 계산하며 살아가는 사람임을 봅니다. 주님을 향한 마음보다 내 삶의 손해와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내 마음을 돌아봅니다. 내 신앙은 사랑 중심인가요, 계산 중심인가요? 나는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조차 때로는 손해인지 이익인지 따지며 머뭇거리는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사랑보다 계산이 먼저 움직이는 내 마음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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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저 드립니다. 그러나 계산하는 마음은 항상 묻습니다. “그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인가?” “그만한 이유가 있는가?” “그럴 만한 사람이 맞는가?” 그래서 계산은 늘 사람의 자격을 먼저 따집니다. “그 사람이 받을 만한가.” “그 사람이 그 정도 가치가 있는가.” 유다의 마음이 바로 그랬습니다. 향유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