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한 가지 전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믿음은 점점 좋아져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단단해져야 하고, 신앙은 점점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근한 압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는 예전보다 나아졌는가, 나는 지금 더 잘 믿고 있는가, 나는 왜
시리즈 · 이지열
은혜이음교회 주일설교 49편
은혜이음교회 주일 설교 원고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의 제자 도마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를 “의심많은 도마”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마치 그가 다른 제자들보다 믿음이 부족했던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도마를 생각하면 어렸을 때 교회에서 보물찾기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종이에 제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이름을 찾으면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름마다
오늘은 성 금요일입니다. 매년, 고난주간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은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대부분 고난주간에는 십자가를 다룹니다. 그래서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이 익숙합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수없이 들었고, 수없이 묵상했고, 수없이 “은혜”라고 말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멀리서 올라온 사람들, 명절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그를 본 적이 있었고, 어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에 있었던 제자들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소위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곧 떠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구약성경을 풀어서 설명하시고, 질문에 답변하시며, 그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끌고 들어왔습니다. 이 여인을 성경은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이라고 말해줍니다. 이 여인을 끌고 온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오늘 본문에는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오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정오는 지금으로 말하면 낮 12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태양은 뜨겁습니다. 정오는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는 밭일도 멈추고, 길도 조용해집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낯시간을 피해서 아침과 저녁에 우물가로 나왔습니다. 우물가는 단순히 물을 긷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요한복음을 읽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이 보입니다.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아무렇게나 나열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대조가 보이도록 본문을 배치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2주간 요한복음 2장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2장에는 두 가지 상반된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가나의 혼인 잔치'와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사건'입니다. 요한은 이 두 이야기를 통
요한복음 2장은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결핍을 채우시는 예수님, 부족함을 메워주시는 예수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는 예수님. 혼인 잔치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은 따뜻합니다. 그
오늘 본문은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장소는 갈릴리의 작은 마을, 가나입니다. 고대 근동의 결혼식은 지금처럼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소 일주일, 때로는 2주 넘게 잔치가 이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머물며 신랑과 신부를 축복했습니다. 결혼식은 개인의 행사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잔칫집의 특징이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대체로 비슷한 리듬으로 시작됩니다. 알람이 울리고, 어제와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어제와 비슷한 길로 집을 나섭니다.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늘 하던 업무, 늘 보던 사람, 늘 오가던 공간들입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집어 듭니다. 오늘 해야 할 일들, 갑자기 추가된 일정들, 지금 답하지 않으면 미뤄질 메시지들.
오늘 설교는 운전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운전하시는 분들은 한 번씩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내비게이션을 켜고 갑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순간이 옵니다. 네비게이션은 우회전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인을 무시합니다. 그냥 직진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곧 길이 막힙니
창세기 5장을 읽다 보면 이름이 이어지고, 나이가 나오고, “몇 살에 낳고, 몇 년을 살고, 죽었더라”가 반복됩니다. 이 건조하고 딱딱한 문장들을 읽다 보면, 솔직히 우리의 마음은 갈 길을 잃습니다. 처음에는 ‘성경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집중하다가, 어느새 마음은 다음 장으로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 찾아옵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의 자리에 있습니다. 찬양과 기도의 순서를 지나 이제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그런데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우리의 마음이 늘 이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몸은 예배당에 있지만 생각은 여전히 지난 한 주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이 내게 들릴지, 예배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새해라는 시간은 우리의 마음에 ‘변화’에 대한 갈망을 일으킵니다. 이제는 좀 달라지고 싶다. 올해는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단단해지면 좋겠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새해에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귀하고 거룩한 다짐을, 입 밖으로 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저합니다. 왜 그럴까요? 진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안의 다짐이 얼마나
오늘은 2025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이 시점에서 오늘 저는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주제를 꺼내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 관대함에 대한 주제입니다. 용서에 대한 설교는 인기가 없습니다. 위로와 소망에 대한 메세지는 ‘아멘’소리가 절로 커지지만, ‘용서하라’는 말 앞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무거워지고 입술이 굳어지는 것을 종종 느낍
종종 우리는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저에게 사람들은 책을 즐겨 선물했습니다. 목회자라서 그런지 책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다른 목회자들 처럼 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책선물은 웬만하면 좋아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저는 책보다 ‘도서상품권’이 훨씬 좋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책을 보는 취향이 조금씩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은 이 본문은 신약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우리는 이 문을 마태의 문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예수님의 기적도, 가르침도, 십자가도 아닙니다. 바로 시간을 따라 흘러온 이름들, 그 이름들이 엮어놓은 긴 이야기, 족보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족보는 오늘날의 이력서였습니다.
2025년 11월 30일 주일 설교자: 이지열 담임목사 여러분도 읽어 보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C.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아주 독특한 형식의 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사단, 악마입니다. 풍자적이고 통찰력 있게,경험 많은 삼촌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이제 막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조카 악마
2025년 11월 23일 주일 설교자: 이지열 담임목사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김수현 작가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의 마음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밑줄을 긋고, 곱씹고, 생각할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청년들이 흔하게 겪고 있는 감정”이라는 챕터를 읽는데 자꾸 우리 청년들이 떠올랐습니다.